나는 받을 세례가 있다
2021년 2월 10일(수)
| 누가복음12:49-59 | |
49 |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
50 |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
51 |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하게 하려 함이로라 |
52 | 이 후부터 한 집에 다섯 사람이 있어 분쟁하되 셋이 둘과, 둘이 셋과 하리니 |
53 | 아버지가 아들과, 아들이 아버지와, 어머니가 딸과, 딸이 어머니와, 시어머니가 며느리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분쟁하리라 하시니라 |
54 |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구름이 서쪽에서 이는 것을 보면 곧 말하기를 소나기가 오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고 |
55 | 남풍이 부는 것을 보면 말하기를 심히 더우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니라 |
56 | 외식하는 자여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분간할 줄 알면서 어찌 이 시대는 분간하지 못하느냐 |
57 | 또 어찌하여 옳은 것을 스스로 판단하지 아니하느냐 |
58 | 네가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법관에게 갈 때에 길에서 화해하기를 힘쓰라 그가 너를 재판장에게 끌어 가고 재판장이 너를 옥졸에게 넘겨 주어 옥졸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
59 | 네게 이르노니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갚지 아니하고서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
예수님께서는 나는 받을 세례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말하는 세례란 고난의 절정이라 할 수 있는 십자가의 죽음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이미 자신이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이를 이룰 날이 속이 오기를 답답한 심정으로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신 이유가 곧 자신의 죽음을 통한 우리의 구원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자신에게 주어진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예루살렘을 향해 묵묵히 걸어가셨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목표와 뜻에 집중하시며 그 사명을 이루어 가셨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사명을 어떻게 감당하고 있습니까? 때로는 그 사명이 내게 십자가로 다가올 때도 있고 여러 가지 고난으로 다가올 때도 있지만 어떻게 이를 견디며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사명을 감당하기 원하십니까?
예수님은 우리에게 “내가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리어 분쟁하게 하려 함이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분쟁이란 집안싸움 정도가 아니라 가족 간의 완전한 분리를 말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복음이 아닌 세상의 편에 선 사람들은 반드시 심판을 받게 될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분리는 가장 가까운 사이인 아비와 아들, 어미와 딸,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서 일어나는 분쟁이 될 수 있습니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고 할지라도 예수님을 받아들이느냐 받아들이지 않느냐에 따라 고통스러운 대립과 갈등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진리는 거짓과 싸울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의로움은 불의와 함께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과거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기가 사는 지역에 대한 기상 현상에 대한 상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이 전하신 복음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보지 못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때가 도래했음에도 불구하고 시대를 분간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며 많은 이적과 기사를 행하셨습니다. 또한 수많은 말씀을 통해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옳은 것을 스스로 판단할 줄 알았으면서도 예수님의 복음을 배척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임할 것은 결국 심판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는 어찌하여 옳은 것을 스스로 판단하지 아니하느냐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새겨들어야 합니다. 재판을 받기 전에 화해를 청하는 것이 당연하듯이 우리는 심판을 당하기 전에 주님의 말씀을 듣고 복음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마지막 심판을 담당하시는 재판관이시기에 세상에 사는 모든 무리들은 재판에 넘겨지고 형벌에 처해지기 전에 주님과의 화해를 청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지금 하나님과의 화해를 거부하면 영원히 화해할 수 없고 영원히 옥에 갇혀 나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께서는 고난의 절정이라 할 수 있는 십자가를 답답한 심정으로 기다리셨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죽음을 통해 우리를 구원하기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묵묵히 이뤄가셨던 것처럼 우리 역시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묵묵히 이뤄갈 수 있는 믿음의 자녀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세상과 우리 가운데 분쟁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그들이 시대를 분간하고 스스로 옳은 것을 판단할 수 있도록 복음을 전파하여 하나님과의 화해를 경험하고 복음의 역사를 체험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 시켜가는 주의 자녀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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