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글

낡아지지 않는 배낭 | 2021년 2월 8일(월)
2021-02-08 08:00:59
광주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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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아지지 않는 배낭 

2021년 2월 8일(월)

 

| 누가복음12:13-34

13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산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하니

14

이르시되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고

15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16

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17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18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22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23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하니라

24

까마귀를 생각하라 심지도 아니하고 거두지도 아니하며 골방도 없고 창고도 없으되 하나님이 기르시나니 너희는 새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25

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느냐

26

그런즉 가장 작은 일도 하지 못하면서 어찌 다른 일들을 염려하느냐

27

백합화를 생각하여 보라 실도 만들지 않고 짜지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큼 훌륭하지 못하였느니라

28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29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30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느니라

31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2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33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둑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34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 

 

        우리는 보통 욕망은 끝이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칼럼리스트이자,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홍기빈 소장은 욕망은 한정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어떤 것을 하든 반복하게 되면 흥미를 잃어버리기 때문이죠. 그런데 욕망 중 무한한 것이 하나 있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돈에 대한 욕망입니다. 왜냐하면 돈은 속성상 미래가치를 담고 있어서 이것을 가지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사람들의 심리와 세상의 흐름을 이미 읽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물질에 대해 자주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본문을 단순히 물질이 아닌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물질을 조심해라.”, “물질을 잘 다스려야 한다.”는 표면적 차원이 아닌 결국 인간이 어떤 세계관을 가지고, 어떤 소망을 품고 살아야 할 것인가에 관한 문제, 즉 인간의 근본적 세계관과 비전에 관한 질문입니다. 17절이 아주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오늘 본문은 곳간을 더 크게 짓고 쌓아두는 이유가(18),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기 위해서라고 말합니다(19). 축적된 부는 미래 가치를 담고 있고, 인간의 마음을 평안하게 해준다고 착각하게 된다는 것이죠. 오늘 본문의 부자가 넉넉한 재산을 확보하여 오랫동안 편안히 살고 싶은 것과 완전히 일치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22절에서 진짜 중요한 것은 목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도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는 인간 ‘존재’ 자체보다 그것을 위한 음식과 옷 즉, ‘소유’에 관심을 가졌고, 이것을 축적하는데 온갖 노력을 다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결론적으로 이렇게 사느니 새와 백합화가 낫다고 말씀하십니다.(24-27절) 예수님의 청중 가운데 다수는 겨우 입에 풀칠만 하거나, 언젠가는 그것을 잃을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에게 음식과 옷을 걱정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사실 고급 자동차와 집의 크기, 휴양지를 두고 고민하는 현대인들에게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얘기입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한 가지 불행만 닥쳐와도 모든 아픔을 다 가지고 사는 것처럼 고민하는 우리는 지금 예수님의 권면에 어떻게 대답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의 이 권면은 어떻게 하면 근심 없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 알려주는 선의의 충고가 아니라 세계의 핵심을 파고드는 도전입니다. 단순히 물질을 잘 사용하고, 잘 다스려야한다는 1차원적 고민이 아닌 우리 삶의 모습, 우리의 세계관을 꿰뚫는 도전입니다. 

 

       세계관이 무엇입니까?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 즉, 어떤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냐는 것입니다. 성경적 세계관, 세상과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비전입니다. vision 이란 영어의 원뜻이 시야, 시각이라는 말입니다. 비전은 우리의 꿈, 야망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을 상상해 보십시오. 축복과도 같은 햇볕이 내리쬐고, 현란한 색색의 꽃들 때문에 눈이 부시고, 생명의 소란함이 가득한나비는 향기를 내며 날아다니고, 꽃들은 바람의 살랑거림으로 파도를 만들어 냅니다. 그러던 어느 날갑자기 정원이 쑥대밭이 되어 버렸습니다. 향기 대신 악취가 진동하고 꽃들은 꺾이고 더럽혀졌습니다. 개들이 들어와서 정원을 훼손한 것입니다. 망가진 정원을 볼 때 어떤 생각이 들까요? 비전이란 보는 것입니다. 눈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마음과 영혼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망가진 정원의 원래 아름다웠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훼손의 정도가 심할수록 처음 모습에 대한 안타까움과 예전의 아름다운 정원으로 회복시키고 싶은 소망이 생겨납니다. 이렇게 본래의 아름다움과 현실의 추함을 동시에 바라보든 이중적 시각이 비전입니다. 오늘 본문 21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다른 언어로 표현하면 망가진 정원을 회복하라.”입니다. 우리의 비전과 꿈은 무엇입니까? 우리 자녀들의 꿈은 무엇이었습니까? 공부 잘하고, 성공해서, 사업이 잘돼서 더 많이 섬기고, 헌금하고, 영향력을 나타내는 것입니까? 이게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성공과 무엇이 다릅니까? ‘하나님의 영광은 양념일 뿐입니다.

 

        그리고 그 정원을 회복하는 방법을 아주 복잡하고, 어려운 것을 말씀하지 않습니다. 너무 간단합니다.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라.”(33) 앞의 18절과 대비가 됩니다. 우리는 더 큰 곳간을 짓고 그곳에 쌓으려고 하는데 예수님은 재산을 다 팔아 배낭을 만들라고 합니다. 배낭하나면 충분하다. 근데 그 배낭은 구제를 통하여 구입할 수 있습니다. 구제가 무엇입니까? 이웃과 나누는 것입니다. 이것은 친한 사람들 모여서 음식 나눠먹고, 접대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냥 우리의 친교, 파티일 뿐입니다. 정말 가난한 사람들과 나누라는 것입니다. 웃과 내 재산을 나누면 낡아지지 않는 배낭을 만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비전을 품고 살아가면, 미래 가치를 지닌 돈을 더 많이 소유하고, 쌓아서 우리가 이루고 싶었던 보장된 미래를 예수님이 책임지신다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나라에 낡아지지 않는 배낭.”을 만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해결책은 정말 심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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