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글

MZ세대를 품는 교회가 되려면 (기독공보 글)
2021-12-07 11:38:38
권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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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세대를 품는 교회가 되려면

 

  오늘 나는 MZ세대의 입장에서 글을 쓰고 싶다. 미국 유학 중, 미국장로교(PCUSA)의 총회가 내가 살고 있던 버지니아의 리치몬드에서 열렸다. 나는 총회를 가까이에서 보기 위해 출입문에서 총대명찰을 확인하여 들여보내는 자원봉사를 신청했다. 첫째 날, 총회 전에 오리엔테이션이 시작되었다. 당연히 총대만 참석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생각은 예상과 달랐다. 오리엔테이션은 세 번 진행되었다. 총대들을 위한 오리엔테이션, 세계 각지에서 참석한 선교사들을 위한 오리엔테이션, 각 노회에서 함께 온 청소년들을 위한 오리엔테이션이었다. 여기까지는 총회의 진행을 설명하는 것이니 이해가 되었다. 그날 저녁, 총회장 투표가 시작되었다. 노회별로 총대, 선교사, 다음세대의 청소년이 함께 자리했다. 투표는 버튼을 누르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총회장 후보들의 정견 발표 후, 투표가 시작되었다. 다음세대, 선교사, 총대 순으로 세 번 투표가 이루어졌다. 투표결과는 단번에 전광판에 나타났다. 다음세대와 선교사의 투표는 실제투표는 아니지만, 큰 의미를 담고 있었다. 다음세대가 원하는 총회장이 누구인지, 선교사들이 원하는 총회장이 누구인지, 다음세대의 눈과 선교사들의 눈은 총대들과 다르기 때문이다. 다음세대는 자신들의 문화와 이해에서, 선교사는 선교정책과 방향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 놀라운 광경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과연 우리는 다음세대와 선교사들의 관점과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가를 질문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세대의 목소리에 관심이 있는가

  MZ세대는 20-30대의 청년과 젊은 가정이다. 기성세대는 젊은이들을 이해하지 못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사회는 젊은 세대를 독특한 세대로 분류하고 특징을 분석한다. 기업가들은 마케팅의 주요한 고객이기에, 정치인들은 선거에 중요한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교회가 젊은이들을 분석하는 이유는 교회의 미래가 걸려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누구의 관점으로 분석하느냐'이다. 교회는 적어도 50-60대의 시각으로 MZ세대를 분석하고 이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마치 옆집에 있는 사람들처럼, 우리와 다른 사람들처럼, 우리 자녀를 보는 마음으로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분석자의 시각의 위치를 가급적 배제하고 생각해 본다면, MZ세대가 다르게 보일지도 모른다. 흔히 사람들은 'MZ세대는 현재가 중요하다' 이것이 그들의 특징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것은 기성세대의 관점에서 젊은이는 미래를 중요하다고 생각해야 한다는 그들의 선입견 때문은 아닐까. 그래서 이상하게 여겨지는 것이다. 기성세대는 이제 미래가 많지 않기 때문에 현재가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둘은 같다. 또 다른 예를 든다면, MZ세대는 '되면 한다'라는 생각을 갖는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되면 한다'는 기성세대에게 나타나는 것이다. 더 이상 실패하면 안되기 때문에, 많은 시간이 없기 때문에 기성세대가 갖는 생각이다. 기성세대는 생각한다. 젊은이라면 당연히 '하면 된다'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기성세대의 젊은 날과 다르기 때문이다. 젊은이라면 도전정신과 미래를 향한 끊임없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선입견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MZ세대와 기성세대는 같을지도 모른다. 오직 다른 것은 청년의 미래가 이전보다 더욱 불투명하다는 것과 시대가 만들어낸 가상공간에 대한 익숙함을 가질 뿐, 그 특징은 기성세대의 특징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MZ세대는 기성세대가 숨겨오며 살아 온 방식을 여과 없이 현실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우리가 바꿔야 할 대상은 MZ세대가 아니라, MZ세대를 바라보는 사람들이다. 즉 기성세대이며, 교회의 어른들이다. 교회의 어른들은 MZ세대가 청년으로서 이전과 다르기 때문에 책임감이 적고, 인내심이 부족하고, 자기중심적이며, 희생정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모두 그렇지는 않다. 젊은이들은 의미있는 일에 오히려 더 깊이 헌신하고, 환경문제에 더 깊이 뛰어든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의미이다. 바꿔야 할 것은 교회의 방향과 관심이다. 교회는 자기 자신을 위한 일이 아니라, 더욱 의미있는 일을 제시해야 하고, 환경문제와 사회의 공공성에 더 깊이 들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방향과 사역들과 공공성과 환경문제 등에 관심을 가질 때, MZ세대는 이전세대에 볼 수 없었던 자본주의를 벗고 그리스도인의 희생과 헌신을 시작할 것이다. 많은 청년들이 가나안 교인이 된 것은 그들이 가진 특징 때문이 아니라, 교회가 시대에 맞는 방향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며, 교회의 구조 안에서 이전 세대의 형태와 소통방법을 유지하고 있기 대문이다. 그러므로 바꿔야 할 것은 기성세대의 시각과 조직과 시스템과 소통방법과 구조이다.

  기독교교육학자이며, 영성학자인 파커 팔머의 <To Know As We Are Known>이라는 책에서 저자는 배움의 공간을 창조하는 방법에 세 가지 본질적인 차원이 있다고 말한다. 첫째, 개방성(openness)이다. 주위와 내면에 있는 장애물을 제거하고, 장벽을 제거하는 것이며, 동시에 무지에 대한 두려움과 배움의 공간을 메워버리려는 불안을 제거해야 한다. 둘째, 경계들(boundaries)이다. 누군가가 도망치는 것을 막아주거나 과도하게 열린 생각과 행동으로부터 보호해 주기도 한다. 셋째, 환대(hospitality)이다. 배움은 서로의 갈등과 새로운 생각을 주의 깊게 받아들이며, 낯선 이와 낯선 말이 환영받는 곳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무지가 폭로되어도, 거짓 정보에 문제제기를 해도, 서로의 사상에 대한 비판을 하는 것도 가능해지게 된다.

  교회는 서로 다른 세대가 함께 살아가는 배움의 공간이다. 다른 세대는 서로에게 낯선 사람들이며, 낯선 언어와 낯선 생각과 낯선 행동을 하게 된다. 그러나 모든 세대가 함께 살아가며, 신앙공동체를 유지해야 한다. 교회 안에서 모든 세대가 함께 변화되려면, 자유롭게 의사를 표현하고 행동하는 개방성이 존재해야 하고, 자신을 드러내는데 두려움과 불안이 없어야 한다. 동시에 서로가 지켜야 할 경계들이 존재해야 한다. 같이 지켜야 할 존중과 품위가 지켜져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누구나 환영받으며, 이해하며, 사랑하며, 품을 줄 아는 따뜻함이 필요하다. 이러한 생각들이 교회공동체 안에 있을 때, MZ세대가 우리의 신앙공동체의 미래로 자리매김하며, 모든 세대가 하나의 그리스도의 몸 된 공동체가 될 것이다.

 

광주제일교회 권대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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