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검은불꽃

20260209 [여호수아 17:7-18]
2026-02-09 06:23:49
광주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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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받은 땅 앞에서 멈춘 사람들

“그 산지도 네 것이 되리니 비록 삼림이라도 네가 개척하라 그 끝까지 네 것이 되리라 가나안 족속이 비록 철 병거를 가졌고 강할지라도 네가 능히 그를 쫓아내리라 하였더라”[여호수아 17:18]


   요셉 지파는 빈손으로 서 있지 않습니다. 이미 분깃을 받았고, 약속은 종이 위의 말이 아니라 손에 잡히는 현실로 다가와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이 가장 흔들리는 자리는 아무것도 없을 때가 아니라 ‘이미 있는 것 앞’일 때가 있습니다. 받을 때는 감사가 나오다가도, 막상 살아내려 하면 마음이 무거워지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요셉 지파에게 주어진 땅이 그랬습니다. 산지가 있었고, 여전히 남아 있는 공간도 있었습니다. 다만 그 땅은 “그냥 앉으면 되는 땅”이 아니라 “손을 대야 드러나는 땅”이었습니다. 숲을 베어야 길이 나고, 돌을 치워야 밭이 되고, 땀을 흘려야 집이 서는 자리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땅이 없다고 하지 않고, 땅이 부족하다고 말합니다. 받은 은혜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그 은혜가 요구하는 수고는 피하고 싶어합니다. 이때 신앙은 미묘하게 멈춥니다. 믿음이 사라져서가 아니라, 은혜를 받은 사람답게 살아내는 걸음이 잠깐 멈춰 서는 것입니다. 말은 여전히 신앙적인데, 삶은 조용히 정체합니다.

   그들이 내미는 이유는 충분히 설득력 있습니다. “가나안 사람들이 있고, 철 병거가 있습니다.” 두려움은 사실을 근거로 말할 때 더 강해집니다. ‘내가 겁이 많아서’가 아니라 ‘상황이 원래 이렇기 때문에’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묵상하는 마음은 여기서 멈춰 서게 됩니다. 내 삶에도 철 병거가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피하고 싶은 책임, 손대기 싫은 관계, 오래 미뤄 둔 회개, 고치지 않은 습관, 드러내기 싫은 상처, 다시 시작하기엔 늦은 것 같은 두려움. 철 병거는 늘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서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은 그 현실을 지워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현실을 인정한 채로, 현실이 믿음의 마지막 기준이 되지 못하게 합니다. 여호수아의 말은 위로의 말이기보다 방향을 다시 잡아 주는 말입니다. “그 산지도 네 것이다… 네가 개척하라.” 하나님은 철 병거를 없애 주신 뒤에 걷게 하시는 분이 아니라, 철 병거가 있어도 말씀으로 걷게 하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그 걷는 과정 속에서, 두려움이 차지하던 자리를 조금씩 내어주게 하십니다. 믿음은 감정이 안정된 뒤에 시작되는 게 아니라, 불안이 남아 있어도 하나님 쪽으로 몸을 돌리는 선택에서 다시 살아납니다.

   이 말씀 앞에 오래 앉아 있으면, 결국 질문은 바깥을 향하지 않고 안으로 들어옵니다. “내가 지금 더 달라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말 부족해서일까?, 아니면 이미 받은 것을 살아내기 싫어서일까?” 우리는 종종 하나님께 더 분명한 확신을 구하면서도, 이미 분명히 들은 말씀 앞에서는 조금 더 미룹니다. 더 좋은 조건, 더 안전한 환경, 더 편한 자리, 더 확실한 보장. 그 모든 것을 기다리며 서 있는 동안, 하나님은 조용히 같은 말씀을 반복하시는지도 모릅니다. “그 산지도 네 것이다.” 이미 주신 자리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라는 뜻입니다. 큰 결심이 아니라, 작은 걸음 하나로.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지 순종, 오늘 내가 끊어야 하는 한 가지 변명, 오늘 내가 붙들어야 하는 한 가지 말씀. 그렇게 한 걸음이 시작되면, 은혜는 다시 ‘기억’이 아니라 ‘현재’가 됩니다. 하나님은 더 주시기 전에, 먼저 걷는지를 보십니다. 그리고 그 질문은 우리를 몰아붙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멈춘 발을 다시 살려 내기 위해 주어집니다. 오늘은 그 산지를 바라보는 날로만 끝내지 않고, 마음을 조금 열어, 은혜가 다시 삶이 되는 자리로 걸어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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