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검은불꽃

20260610 [열왕기상 8:22-30]
2026-06-10 06:35:18
광주제일교회
조회수   33

검은불꽃 이미지.jpeg

하늘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거늘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이오리이까 그러나 내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돌아보시며 이 종이 오늘 주 앞에서 부르짖음과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열왕기상 8:27-28]


   신앙의 사계를 거치며 깊어진다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지식이 많아지는 것을 넘어, 그분을 다 알 수 없다는 거룩한 신비와 경외감 앞에 압도되는 과정입니다. 믿음의 걸음이 단순할 때는 기도하면 즉시 응답받고 순종하면 모든 탄탄대로가 열릴 것처럼 생각하지만, 세월의 묵은 먼지가 쌓이고 영혼의 겨울을 지나며 우리는 인생의 고난과 눈물이 그리 단순한 인과논리로 설명되지 않음을 뼈아프게 배웁니다. 솔로몬은 인생의 가장 찬란한 성공의 정점, 인간의 영광이 극치에 달한 성전 완공의 날에 도리어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다"라며 하나님의 무한하심 앞에 자신을 온전히 비워내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섭리와 광대하심은 인간이 제한적인 지혜로 빚어낸 얄팍한 상식이나 과거의 작은 경험이라는 영적 틀 안에 결코 갇히지 않습니다. 참된 믿음의 성숙은 삶의 모든 의문과 모순에 대한 명쾌한 답을 내 손에 쥐고 안도하는 데 있지 않고, 다 이해할 수 없는 인생의 막막한 침묵 속에서도 내 생각과 계산보다 훨씬 크신 하나님께 나의 전 존재를 의탁하는 겸손한 항복에 있습니다.

   돌아보면 마음에 소리 없이 번지는 수많은 염려와 실족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앙에서라기보다, 그분을 눈앞의 현실보다 작게 가두어둔 좁은 시선에서 비롯되곤 합니다. 거친 현실의 파도와 불투명한 건강의 위기, 혹은 굳게 닫힌 문에 마음을 빼앗기는 순간 우리의 영혼은 두려움과 불안의 무게에 너무도 쉽게 잠식당합니다. 그러나 소년 다윗이 거구의 거인 골리앗 앞에서 기죽지 않고 담대히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눈앞의 대적이나 위황한 환경이 작아서가 아니라, 그의 온 영혼을 가득 채운 하나님이 세상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크고 두려운 분이심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눈앞에 엄연히 존재하는 결핍과 아픔, 삶의 부조리를 애써 외면하거나 없는 척 기만하는 영적 눈속임이 아닙니다. 현실의 거대한 장벽을 압도하고도 남을 만큼 광대하신 주님의 보좌를 대면함으로써, 나를 집어삼킬 듯 짓누르던 문제의 크기를 하나님의 무한하신 크기 아래 다시 재조정하는 영혼의 거룩한 시선입니다.

   복음이 가진 가장 경이로운 신비는 온 우주와 인류의 거대한 역사를 경영하시는 이 초월적인 하나님께서, 이름 없이 피어난 한 사람의 나직한 신음과 밤이슬 같은 눈물에 온 마음을 다해 귀를 기울이신다는 영적 역설에 있습니다. 하늘조차 담을 수 없는 크신 분이 나의 가장 작고 초라한 골방의 비명에 주파수를 맞추신다는 사실은, 세상의 어떤 명쾌한 논리보다 우리 영혼을 깊이 위로합니다. 기다림의 터널이 끝없이 길어지고 하나님의 부재와 침묵만이 사방의 벽을 타고 흐르는 것 같은 캄캄한 밤일지라도, 신실하신 주님은 결코 멈추어 계신 것이 아니라 인간의 지각이 가닿지 못하는 은밀하고 깊은 원천에서 당신의 가장 선한 때와 완전한 섭리를 향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일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신뢰는 모든 상황이 내 마음에 쏙 들게 설명되고 인지되는 빛의 자리가 아니라, 사방이 막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오직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과 그분의 변함없는 선하심만을 인정하며 묵묵히 걸어가는 고요한 한 걸음입니다. 내가 다 알 수 없고 내 손으로 통제할 수 없다고 해서 하나님이 일하지 않으시는 것이 아님을 기억하며, 나의 모든 실패와 두려움보다 크신 주님을 바라봄으로써, 오늘 하루 가운데 온전한 이해를 넘어 깊은 신뢰의 자리로 나아가기를 소망합니다.

댓글

댓글쓰기 권한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