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검은불꽃

20260604 [열왕기상 3:4-15]
2026-06-04 06:30:59
광주제일교회
조회수   24

검은불꽃 이미지.jpeg

듣는 마음을 주소서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든지라"[열왕기상 3:9-10]


   살아가며 마주하는 수많은 선택 속에서, 때로 영혼의 밑바닥까지 뒤흔드는 결정적인 결정의 분수령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만약 오늘 밤, 삶의 모든 생사화복을 친히 주관하시는 창조주께서 서슬 푸른 현실의 무게와 막막한 장벽을 견디고 있는 내게 찾아와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고 하신다면, 마음속에 가장 먼저 떠오를 단어는 무엇일지 가만히 영혼의 민낯을 돌아봅니다. 왕위라는 화려한 보좌에 올랐으나 안팎으로 몰려드는 영적 중압감 속에서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라며 자신의 한계와 무능을 소름 끼치도록 잘 알고 있었던 젊은 왕 솔로몬은, 뜻밖에도 세상이 자랑하는 마병의 힘이나 정적의 생명을 멸할 철권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생명과 안전, 그리고 나라의 안위를 온전히 하늘에 내맡기는 처절한 일천번제의 예배 끝에, 그저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구했을 뿐입니다. 우리가 인생의 가장 깊은 어둠과 위기 앞에서 무엇을 갈망하고 무엇을 붙잡으려고 부르짖는가는 나의 가장 날것의 상태와 내면의 세계관을 고스란히 비추어내는 거울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단순히 우리가 아쉬울 때마다 찾아가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조르는 요술 램프가 아니라 기도의 깊은 동기와 숨은 지향점을 저울질하시는 분이기에, 손에 쥔 거품 같은 세상의 소유가 아닌 사명을 완수하려는 솔로몬의 순결한 신뢰를 보시고 그분의 중심이 크게 요동치는 깊은 감동을 받으셨습니다.

   솔로몬이 무릎으로 구했던 분별력의 구체적인 실체는 인간의 탁월한 지능이나 영악한 처세술이 아니라, 하나님과 사람의 소리를 가슴으로 바르게 받아내는 마음, 곧 ‘레브 쇼메아(듣는 마음)’였습니다. 히브리어 구문에서 ‘레브(마음)’는 단순히 감정의 영역을 넘어 지성과 감성과 의지가 유기적으로 통합된 전인격적인 중심이며, ‘쇼메아(듣는)’는 물리적인 소리가 귀에 도달하는 청각적 현상을 넘어 그 말씀에 완전히 압도되어 온 삶으로 반응하고 복종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즉, 솔로몬이 그토록 갈망했던 지혜는 자기중심적인 독단이나 세상의 까다로운 난제를 단번에 해결해 버리는 신비한 초능력이 아니라,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 앞에 자신을 완전히 낮추어 개방하겠다는 겸손한 경청의 태도였습니다. 이 '듣는 마음'의 영성은 수직적으로는 세상의 모든 시끄러운 소음과 탐욕의 소리를 차단하고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에 내 영혼의 주파수를 맞추어 그분의 법도를 따르겠다는 절대적인 순종이며, 수평적으로는 내가 속한 삶의 자리에서 소외되고 고통받는 이웃들, 그들의 억울한 눈물과 작은 신음 소리까지도 내 가슴으로 고스란히 받아내겠다는 따뜻한 공감과 소통의 마음입니다. 예배의 자리에 나와서조차 내 요구사항을 관철하기 위해 너무 많은 말을 쏟아내느라 정작 하나님의 엄위하신 음성에는 철저히 귀가 먹어 있었던 것은 아닌지, 내 주장과 내 의로움만을 증명하려 타인의 목소리를 가로막고 곁에 있는 지체들의 멍든 목소리를 외면했던 것은 아닌지 깊은 영적 성찰이 밀려옵니다.

   참된 지혜는 이 세상의 조건과 물질을 얼마나 많이 소유하느냐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거룩한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날카롭게 알아채는 영적 분별력에 있으며, 여호와를 두려워하고 예배하는 삶의 여정 속에서 필연적으로 맺히는 ‘경외의 열매’입니다. 우리는 솔로몬이 듣는 마음을 구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가 구하지도 않은 부귀와 영광, 장수의 복까지 보너스로 얹어주신 이 극적인 사건을 바라보며, 지혜를 얻으면 세상의 성공은 저절로 따라온다는 성공 방정식으로 본문을 왜곡하곤 하지만, 성경이 선포하는 지혜의 본질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 그 자체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세상의 거대한 물질과 권력을 흔쾌히 맡기실 수 있었던 진짜 이유는, 그가 세상의 힘이 아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듣는 마음’의 소유자가 되었을 때 비로소 그 거대한 풍요에 마음을 빼앗겨 스스로 우상이 되거나 타락하지 않고 그것들을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흘려보내는 거룩한 통로로 다룰 수 있는 ‘영적 그릇’이 준비되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트렌드와 주식의 동향, 내 자존심을 지키는 소리에는 본능적으로 민감하면서 고도로 발달한 물질문명 속에서 스스로 똑똑하다고 자부하며 내 고집만 피우던 비대해진 자아를 십자가 앞에 내어놓고 걸음을 멈추어 섭니다. 이제는 내 생각의 기득권을 내려놓고 오직 주님의 세밀한 통치하심을 분별하는 ‘레브 쇼메아’의 기도로 돌아가, 세상의 성공을 탐하는 영악한 기술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세상이 줄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는 주님의 참된 평강을 평생토록 풍성히 누리는 고요하고 깊은 영혼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댓글

댓글쓰기 권한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