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큰 소리보다 깊은 곳에서 말씀하신다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열왕기상 19:12]
살아가다 보면 마음이 지칠 때가 있습니다. 특별히 큰 실패를 경험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오랫동안 견디고 버텨 온 끝에 찾아오는 지침이 있습니다. 해야 할 일을 감당하며 하루하루를 살아왔고, 맡겨진 책임도 외면하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 마음 깊은 곳에서 설명하기 어려운 무력함이 밀려올 때가 있습니다. 몸이 피곤한 것과는 조금 다른 종류의 피곤함입니다. 기도를 해도 마음이 쉽게 정리되지 않고, 말씀을 읽어도 예전처럼 가슴이 뜨거워지지 않습니다. 사람들 사이에 있어도 홀로 있는 것 같고, 누구에게도 쉽게 꺼내 놓을 수 없는 생각들이 마음속에 쌓여 갑니다. 엘리야가 호렙산 굴속에 머물렀던 시간도 어쩌면 그런 시간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갈멜산의 승리 이후 찾아온 그의 무너짐은 믿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 오래 하나님 앞에서 충성하며 살아왔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종종 신앙이 깊어질수록 지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성경은 오히려 가장 치열하게 하나님을 따라간 사람들도 깊은 탈진의 시간을 통과했음을 보여 줍니다. 중요한 것은 지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지친 자리에서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놓지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굴속에 숨어 있는 엘리야에게 다가오셔서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그것은 책망의 질문이 아니라 마음을 열게 하시는 질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엘리야의 형편을 다 알고 계셨지만 그의 입술을 통해 그의 마음이 하나님 앞에 쏟아지기를 기다리셨습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의 기도 역시 하나님께 새로운 정보를 알려 드리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우리의 참모습을 가지고 나아가는 시간인지도 모릅니다. 사람들 앞에서는 괜찮은 척할 수 있어도 하나님 앞에서는 숨길 수 없고, 또 숨길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강한 사람보다 정직한 사람을 만나 주시고, 완벽한 사람보다 하나님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이어지는 장면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습니다. 강한 바람이 지나가고 땅이 흔들리며 불이 나타났지만 하나님은 그 가운데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우리는 흔히 하나님께서 분명하고 강한 방식으로 말씀하시기를 기대합니다. 인생의 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만한 기적을 원하고, 의심할 수 없는 응답을 기다리며, 현실을 뒤집어 놓을 만한 역사를 소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종종 우리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다가오십니다. 하루를 시작하며 읽은 말씀 한 구절이 종일 마음에 머무를 때가 있고, 새벽의 짧은 기도 가운데 설명할 수 없는 평안이 찾아올 때가 있으며, 아무도 모르는 눈물의 자리에서 다시 살아갈 힘을 얻게 되는 순간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크지 않지만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세상의 소리는 사람의 감정을 흔들지만, 하나님의 음성은 사람의 존재를 붙듭니다. 세상의 소리는 잠시 귀에 머물지만, 하나님의 음성은 영혼 깊은 곳에 스며들어 오래 남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하나님이 침묵하신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다른 소리에 너무 익숙해져 있어서 그분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하나님은 언제나 큰 사건 속에서만 일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때로는 오랜 기다림 속에서,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은 시간 속에서 가장 깊은 일을 이루어 가십니다. 신앙은 하나님께서 얼마나 크게 말씀하시는가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얼마나 하나님께 귀를 기울이고 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돌아보면 하나님은 언제나 큰 소리보다 깊은 곳에서 사람을 만나 오셨습니다. 모세는 광야에서, 다윗은 목동의 들판에서, 예레미야는 눈물의 자리에서, 엘리야는 굴속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먼저 변화시키신 후에 상황을 다루셨고, 환경보다 영혼을 먼저 만지셨습니다. 그래서 신앙의 성숙은 더 많은 것을 아는 데 있지 않고, 하나님께서 내 삶 가운데 이미 일하고 계심을 신뢰하는 데 있습니다. 엘리야는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은 이미 칠천 명을 남겨 두고 계셨고, 다음 시대를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엘리야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손은 한순간도 멈춘 적이 없었습니다. 우리의 삶도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종종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기도해도 변하는 것이 없는 것처럼 느끼며, 하나님께서 멀리 계신 것처럼 여길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보지 못하는 자리에서도 여전히 일하고 계십니다. 오늘도 우리 삶의 분주함과 소음 너머에서 조용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잠시 걸음을 늦추고 마음을 하나님 앞에 머물게 할 때, 오래전부터 우리 곁을 떠난 적 없으신 주님을 다시 발견하게 됩니다. 큰 소리보다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며, 그 음성으로 위로받고 다시 힘을 얻어 주님과 동행하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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