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검은불꽃

20260619 [열왕기상 16:21-28]
2026-06-19 06:23:16
광주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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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오므리를 기억하지만

“오므리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그 전의 모든 사람보다 더욱 악하게 행하여” [열왕기상 16:25]


   사람의 기억은 생각보다 오래가지 않습니다. 한 시대를 이끌었던 사람도, 많은 업적을 남긴 사람도 시간이 흐르면 점점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희미해집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살아가면서 무언가를 남기고 싶어 합니다. 그것은 어쩌면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심어 두신 삶의 책임감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가정을 세우기 위해 애쓰고, 누군가는 맡겨진 일을 성실히 감당하며, 누군가는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의미 있는 흔적을 남기기 위해 수고합니다. 오므리 역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혼란했던 북이스라엘을 정비했고, 사마리아를 수도로 세우며 나라의 새로운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당시 사람들의 눈에는 분명 능력 있는 왕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열왕기는 그의 업적을 길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의 인생을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하나님 앞에서의 모습을 기록합니다. 사람들은 그가 세운 성읍을 보았지만 하나님은 그가 걸어간 길을 보셨고, 사람들은 그의 능력을 기억했지만 하나님은 그의 마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었는지를 보셨습니다. 이 말씀 앞에 서면 자연스럽게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지금 나는 무엇을 이루기 위해 애쓰고 있는지, 그리고 그 모든 수고 속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는 어떤 자리에 놓여 있는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오므리의 이야기가 마음에 오래 남는 이유는 그의 삶이 특별히 실패한 인생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는 성공한 사람에 더 가까웠습니다. 그래서 본문은 더욱 조용하고 깊은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사람은 눈에 보이는 열매로 자신을 판단하기 쉽습니다. 일이 잘되면 괜찮은 줄 알고, 계획한 대로 흘러가면 하나님도 기뻐하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신앙의 길은 언제나 그것보다 더 깊은 곳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얼마나 많은 일을 해냈는가보다 그 일을 하는 동안 하나님을 의지하며 걸어갔는가를 보십니다. 여로보암의 길을 따라갔던 오므리의 모습은 죄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보여 줍니다. 죄는 어느 날 갑자기 사람을 무너뜨리기보다 조금씩 하나님을 향한 감각을 무디게 만듭니다. 처음에는 마음에 걸리던 것이 점점 익숙해지고, 처음에는 두려웠던 것이 어느새 자연스러워집니다. 그래서 신앙은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마음을 살피는 일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말씀 앞에 머물고, 기도의 자리를 지키며, 자신의 생각보다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하려는 몸부림이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믿음은 거창한 일을 이루는 데서 자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잊지 않으려는 작은 순종 속에서 자라기 때문입니다.

   세월이 지나면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던 많은 것들은 결국 우리 손을 떠나게 됩니다. 자랑하던 업적도, 붙들고 있던 자리도, 사람들의 칭찬도 언젠가는 사라집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함께 걸어온 시간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아무도 알지 못하는 자리에서 드렸던 기도와 눈물, 넘어질 때마다 다시 하나님께 돌아왔던 회개의 마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붙들었던 믿음은 하나님 앞에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의 성숙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알려졌는가에 있지 않고 하나님 앞에 얼마나 진실하게 서 있는가에 있는 것 같습니다. 오므리는 사마리아를 남겼지만 믿음의 향기는 남기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은 조금 다를 것입니다. 큰 이름을 남기지 못해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남기는 삶, 화려한 업적은 없어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걸어온 흔적을 남기는 삶,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는 잊혀질지라도 하나님께서 기억하시는 삶 말입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언젠가 하나님 앞에 서는 날 내가 무엇을 이루었는가보다 누구를 사랑하며 살아왔는가를 돌아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날 주님께서 우리의 삶 속에 남겨진 믿음의 흔적을 기쁘게 바라보시기를 조용히 소망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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