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앞에서 바른 길 걷기
요담이 그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바른 길을 걸었으므로 점점 강하여졌더라(6)
본문의 기록자는 유다왕 요담에 대해 열왕기의 기록을 따라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요담이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다는 기록에 이어 한 가지 내용이 따라붙습니다.
요담이 여호와의 성전에는 들어가지 아니하였다 라는 기록입니다.
다른 번역은 ‘그의 아버지와는 달리 주의 성전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라고 표현합니다.
무슨 이야기일까요.
본문의 기자는 이 구절을 통해 웃시야에게 나병이 발병하게 했던 교만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웃시야는 제사장들이 극구 만류했음에도 듣지 않고 제사장들만이 감당해야 하는 직무를 시도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웃시야를 치심으로 죽는 날까지 격리되어 외로이 살아갔습니다.
아들인 요담은 아버지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았습니다.
역사가 반복되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근본적인 것은
시간이 흘러도, 역사적 무대나 기술이 변하여도 인간의 본성이 변하지 않고 그대로이기 때문입니다.
사회 구조적 한계로 인해 유사한 행동양식이 계속 반복됩니다.
지난 시간의 성찰이 없다면 우리 인간은 곧 다른 형태의 어려움을 마주하게 될지 모릅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말씀을 따라 선을 행하되 동일한 잘못을 반복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이 먼저 변화하기를 힘쓰고 개혁해야 합니다.
요담은 여호와의 전 윗문을 건축합니다.
본문의 기자는 성전을 보수하거나 개혁하는 일들을 주목하고 중요한 요소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는 건물 수리나 증축, 업적의 개념보다 왕의 마음이 어디 있는지 보여주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오래전 다윗이 하나님을 사랑하여 하나님의 집을 세우려 마음 썼던 일과 동일한 모습입니다.
남들에게 보이려는 화려함을 추구하거나 자기 의, 자기 공로를 드러내려는 마음이 아닌
오직 하나님을 생각하며 사랑하는 구체적인 표현과 행위로서 성전 보수와 개혁입니다.
기록자는 요담이 그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바른 길을 걸었으므로 점점 강하여졌더라 라고 증거합니다.
선왕들은 탐심이 가득 들어차거나/ 마음이 변질되고 교만하게 되어
일을 그르치고 마지막을 아름답지 못하게 마쳤습니다.
그러나 요담은 선왕들과 달리 시작과 함께 마지막까지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행하려 했습니다.
그는 여호와의 전 윗문 건축하며 성벽 증축했습니다. 유다 산간 지역에 요새를 세우며 암몬과도 싸웠습니다.
참 열심히 살았습니다. 아마도 다른 왕들도 저마다 그러했을 것입니다.
그 가운데 왜 힘든 일이 없고 넘어지며 쓰러지는 일이 없었을까요. 분명히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본문의 기자가 증거하는 말씀은 요담이 거룩한 일상을 지키려는 영적 투쟁/ 몸부림의 표현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하면 일생을 바르게 살아갈 수 있을까 애쓰는 그 마음과 삶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결국 요담은 여호사밧 이후에 다윗 성 왕실 묘지에 들어가게 된 첫 번째 왕이 됩니다.
과거의 신앙을 계속 우려먹으려는 태도로는 안 됩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다고 해서 어떠한 비평의 과정도 없이 계속 답습하거나 생각 없이 이어가려는 신앙은 생명력이 없습니다.
말씀을 통해 우리 신앙을 진단하며 오늘 우리의 신앙이 죽은 신앙이 아닌, 살아 생명력 넘치는 신앙을 이루어가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삶을 살아가려 애쓰는 바로 그 사람을 보시고 아십니다.
사랑의 주님,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끝까지 바른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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