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검은불꽃

20260724 [열왕기하 24:8-17]
2026-07-24 06:08:02
광주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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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잃은 것 같을 때

"그가 여호와의 성전의 모든 보물과 왕궁 보물을 집어내고 또 이스라엘의 왕 솔로몬이 만든 것 곧 여호와의 성전의 금 그릇을 다 파괴하였으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열왕기하 24:13]


   사람은 살아가면서 모든 것을 잃은 것 같은 시간을 한 번쯤 만나게 됩니다. 애써 쌓아 온 것이 한순간에 무너지고, 믿었던 사람이 떠나고, 익숙했던 삶의 자리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런 시간은 단순히 무엇 하나를 잃는 아픔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이제는 무엇을 붙들고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열왕기하 24장은 바로 그런 시간을 지나던 유다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성전의 보물은 바벨론으로 옮겨지고, 왕은 포로가 되며, 나라를 지탱하던 사람들까지 하나둘 예루살렘을 떠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상징이었던 성전도 더 이상 그들을 지켜 주지 못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들의 눈에는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 절망을 길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대신 아주 짧은 한 문장을 남깁니다.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이 말씀은 무너지는 현실보다 더 깊은 곳을 바라보게 합니다. 역사는 사람들의 손에서 흔들리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갑자기 등을 돌리신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셨고, 기다리셨으며, 끝내 그 말씀을 이루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침묵하신 것이 아니라, 너무 오래 참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침묵이라고 생각하는 시간 속에도 하나님은 결코 자리를 비우신 적이 없습니다.

   그렇게 본문의 첫 장면을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우리의 삶도 돌아보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하나님보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을 더 의지하며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건강이 계속될 것이라고 믿고, 익숙한 관계가 변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며, 지금의 형편이 내 삶을 지켜 줄 것처럼 살아갑니다. 그것들이 모두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사실은 기억하면서도, 어느 순간 선물을 주신 분보다 선물 자체를 더 붙들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때로 우리가 의지하던 것들을 흔드십니다. 그것은 우리를 넘어뜨리려는 손길이 아니라, 더 깊은 곳으로 부르시는 손길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눈에 보이는 것 위에 세워져 있는지, 아니면 하나님 자신 위에 세워져 있는지를 드러내시는 시간입니다. 이 과정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기도해도 쉽게 풀리지 않고, 이유를 알 수 없는 시간이 오래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나온 믿음의 길을 돌아보면 가장 하나님을 가까이 알게 되었던 때는 모든 것이 넉넉했던 시절보다 오히려 아무것도 붙들 수 없었던 시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손을 비우심으로 우리를 빈 사람으로 만드시는 것이 아니라, 그 빈 손에 하나님 자신을 다시 채워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상실은 하나님의 부재를 말하는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 삶의 중심을 다시 바로 세워 가시는 과정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시선으로 마지막 장면을 바라보면 포로로 끌려가는 사람들의 발걸음도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사람들은 다윗 왕조가 끝났다고 생각했고, 언약도 함께 사라졌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포로의 땅에서도 다윗의 계보를 지키고 계셨습니다. 사람들의 눈에는 끝이었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였습니다. 훗날 여호야긴은 다시 은혜를 입게 되고, 그 계보를 따라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무너진 예루살렘에서도, 낯선 바벨론에서도 당신의 구원 역사를 한 번도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우리의 삶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오늘만 바라보기에 잃어버린 것이 먼저 보이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내일과 그 이후까지 함께 보고 계십니다. 그래서 믿음은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보다 더 깊이 일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이해되지 않는 일도 하나님의 손 안에서는 결코 흩어진 조각이 아닙니다. 언젠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흘린 눈물과 지나온 시간까지도 하나의 은혜로 엮어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잃은 것 같은 날에도 너무 서둘러 인생을 결론짓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하나님의 언약도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오늘도 보이는 현실보다 변함없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더 깊이 바라보며, 끝까지 우리를 놓지 않으시는 그분의 손 안에서 참된 평안을 누리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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