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들으셨으니
아람 왕이 이스라엘을 학대하므로 여호아하스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들으셨으니...(4)
예후 왕조에 흐르는 중심 가치는 이것이었습니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여로보암의 죄를 따라가고..(2)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여로보암의 모든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고(11)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약속은 성취되지만, 여로보암의 죄를 따르며 그 길을 행함은 여전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사시대와 동일한 구조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1 이스라엘이 여로보암의 죄와 그 길을 따릅니다.
2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아람 왕 하사엘과 벤하닷에게 넘기십니다.
3 아람 왕의 학대로 고통이 심해지니 여호아하스가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4 하나님께서 왕의 간구를 들으심으로 구원자를 통해 구원을 베푸십니다.
5 그럼에도 이스라엘은 여로보암의 길을 따릅니다.
사사시대나 왕정 시대가 별반 다를 게 없다는 메시지입니다. 왕이 있고 없음이 문제가 아닙니다.
변하는 인생이 아닌 변하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과 그 하신 말씀이 중심점과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놀랍게도 여호아하스는 금송아지가 아닌 사람의 소리를 귀 기울여 들으시는 하나님,
들으실 뿐만 아니라 응답하시는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여호아하스의 간구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구원자를 보내주심으로 그의 간구에 응답해 주십니다.
이는 인격적인 관계에서만 발생하는 놀라운 사건입니다.
상황이 이러하다면, 여호아하스와 이스라엘이 여로보암의 길에서 떠날 정말 좋은 기회이지 않을까요?
하나님만을 온전히 경외하고 섬기기 시작할 때 말입니다.
그런데 인생의 마음이 참으로 완악합니다.
오랜 시간 그 마음과 삶 속에 깊이 뿌리내린 종교적이고 신앙적인 전통이 얼마나 강한지
그것을 버리지 못합니다.
강한 상징적 형상, 정치적 종교 그것을 내어버리고 청산해야만 새로운 날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이 하나님을 참 만홀히 여길 때가 많습니다.
위기가 찾아들었을 때 살려달라고 엎드리다가도 문제가 해결되면 하나님에 대한 마음도 헌신도 무뎌집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인생에 끊임없이 은혜를 베푸심으로 회복에 이르게 하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언약을 기억하시고 이행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날마다 죄의 길에서 떠나 마음을 돌이켜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사랑의 주님, 우리 신앙 전통이 복음과 상관없는 자기 고집과 닫힌 사고라면 폐하여 주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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