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앞에 서 있는 사람
“여호와께서 각 선지자와 각 선견자를 통하여 이스라엘과 유다에게 지정하여 이르시기를 너희는 돌이켜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 나의 명령과 율례를 지키되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명령하고 또 내 종 선지자들을 통하여 너희에게 전한 모든 율법대로 행하라 하셨으나”[열왕기하 17:13]
신앙이 무너지는 데에는 대개 큰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하나님을 부인하고, 믿음을 모두 버리겠다고 결심하는 데서 시작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오히려 마음에 걸리는 말씀이 있어도 조금 뒤로 미루고, 돌이켜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직은 때가 아니라며 지나치고, 하나님의 뜻보다 내 형편과 감정을 한 걸음 앞세우는 작은 선택에서 틈이 생깁니다. 처음에는 마음이 불편합니다. 그런데 같은 선택을 몇 번 되풀이하고 나면 불편함이 줄어듭니다. 전에는 기도하지 않고 결정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그것이 자연스러워지고, 전에는 말씀에 어긋나는 태도가 부끄러웠는데, 나중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스스로를 이해시키게 됩니다. 그렇게 사람의 마음은 갑자기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말씀 앞에 서는 일을 조금씩 피하면서 멀어집니다. 북이스라엘의 역사도 그랬습니다. 하나님께서 침묵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보내셨고, 여러 번 타이르셨으며, 돌아오라고 오래 부르셨습니다. 그들의 죄가 가볍기 때문에 기다리신 것이 아니라, 그들이 다시 살아나기를 원하셨기 때문에 기다리셨습니다. 하나님은 잘못을 보지 못하시는 분이 아니시지만, 잘못한 사람을 쉽게 버리시는 분도 아니십니다. 책망하시는 말씀 속에는 그들을 다시 품으려는 하나님의 마음이 있었고, 돌이키라는 명령 속에는 아직 길이 닫히지 않았다는 은혜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백성은 그 말씀을 들으면서도 자신의 삶을 말씀 앞으로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말씀이 귀에는 닿았지만 마음 깊은 곳까지 내려가지 못했고, 마음에 머물지 못한 말씀은 결국 삶의 방향을 돌려놓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북이스라엘의 가장 큰 비극은 나라가 무너졌다는 데만 있지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그토록 오래 말씀하고 계셨는데도, 그 말씀이 더 이상 자신을 움직이지 못하도록 마음이 굳어졌다는 데 더 깊은 비극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가 오래전 한 나라의 멸망으로만 남지 않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께서 말씀하지 않으셔서 길을 잃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많은 말씀을 들었고, 어떤 말씀은 외울 만큼 익숙하며, 어떤 구절은 듣는 순간 그다음 문장까지 떠오르기도 합니다. 문제는 익숙함이 언제나 믿음의 깊이를 말해 주지는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오히려 너무 익숙해서 더 이상 마음을 멈추게 하지 못하는 말씀도 있습니다. 용서하라는 말씀을 들으면서도 나를 아프게 한 사람이 얼마나 잘못했는지를 먼저 생각하고, 낮아지라는 말씀 앞에서는 내가 이미 얼마나 참고 양보했는지를 헤아립니다. 섬기라는 말씀을 들으면 순종보다 피곤함이 먼저 떠오르고, 돌아오라는 말씀 앞에서는 내 사정과 형편을 길게 설명합니다. 말씀을 듣고 있으면서도 그 말씀의 시선 아래 나 자신을 세우지 않는 것입니다. 말씀은 다른 사람의 잘못을 더 잘 보게 하는 불빛이 아니라, 내 안에 감추어진 마음을 비추는 빛인데도 우리는 자주 그 빛을 다른 쪽으로 돌려 버립니다. 그래서 말씀 앞에 선다는 것은 성경 지식을 더 많이 쌓는 일이 아닙니다. 내가 옳다고 믿어 온 생각을 다시 살피고, 오랫동안 품어 온 감정도 하나님 앞에 내어놓으며, 내 경험과 판단이 말씀보다 높아져 있지는 않은지 조용히 돌아보는 일입니다. 때로는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고, 먼저 손 내미는 것이며, 손해를 보더라도 정직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자리에서 맡겨진 일을 묵묵히 감당하고, 사람들의 칭찬이 없어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한 걸음 내딛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런 순종은 대단해 보이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신앙은 대개 이런 작은 자리에서 그 진실이 드러납니다. 말씀이 삶에 뿌리내렸는지는 큰 결단의 순간보다, 오늘 내가 어떤 말을 삼키고 어떤 태도를 내려놓으며 누구를 품는지에서 더 분명히 나타납니다. 말씀은 우리의 삶을 장식하는 아름다운 문구가 아니라, 굽어진 마음을 바로잡고 흐트러진 걸음을 다시 하나님께 향하게 하는 손길입니다. 그래서 말씀 앞에 오래 머문 사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자기 확신이 강해지기보다 하나님 앞에서 더 부드러워집니다.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함부로 말하지 않고, 맡은 일이 커질수록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더 조심하며, 다른 사람을 판단하기 전에 자신의 마음부터 살피게 됩니다. 말씀은 사람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낮추고, 낮아진 그 자리에서 비로소 하나님만 의지하게 합니다. 그 낮아짐이 초라한 것이 아니라 은혜인 줄 알게 될 때, 말씀은 더 이상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소리가 아니라 우리를 살려 내는 음성으로 들리기 시작합니다.
그 음성이 우리를 살리는 까닭은 하나님의 말씀이 잘못을 드러내는 데서 멈추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씀은 우리의 완고함을 밝히 보이지만, 그것으로 우리를 밀어내지 않습니다. 오히려 감추어진 것을 드러내어 고치시고, 길을 잃은 것을 깨닫게 하여 다시 돌아오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돌이키라”고 말씀하신다는 것은 아직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셨다는 뜻입니다. “내 계명과 율례를 지키라”고 하신다는 것은 다시 하나님과 함께 걸을 길이 남아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책망을 받으면 하나님께서 나를 멀리하시는 것처럼 느끼지만, 사실 아무 말씀도 들리지 않는 상태보다 책망을 듣는 상태가 더 은혜롭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냥 두지 않으시고, 우리가 허무한 것을 따라 허망해지는 것을 원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다시 말씀하십니다. 말씀 앞에 선다는 것은 심판대 앞에서 변명할 말을 찾는 일이 아니라, 우리보다 우리를 더 잘 아시는 하나님 앞에 마음을 열고 다시 붙들어 달라고 맡기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사람은 흠이 없고 실수하지 않는 사람이 아닙니다. 넘어졌어도 말씀을 붙들고 다시 일어서는 사람, 마음이 굳어졌음을 깨달았을 때 부드럽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사람, 자기 뜻을 이루는 것보다 하나님의 뜻 안에 머무는 것을 더 귀하게 여기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자신이 강해서 서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 붙들려 서게 됩니다. 사람들의 평가가 좋을 때도 들뜨지 않고, 기대와 다른 일을 만났을 때도 쉽게 무너지지 않으며, 알아주는 이가 없어도 맡겨진 자리를 지킬 수 있는 까닭은 자신의 이름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기대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서두르지 않고 빚어 가십니다. 때로는 기다리게 하시고, 때로는 내려놓게 하시며, 때로는 마음 아픈 책망을 지나게 하시지만, 그 모든 시간을 통해 말씀보다 앞서 있던 것들을 하나씩 걷어 내십니다. 그렇게 한 사람의 마음이 낮아지고 부드러워질 때, 하나님은 그를 통해 다른 사람을 살리고 공동체를 세우며 당신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오늘 하루도 많은 말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놓치지 않고, 내 마음을 변호하기보다 먼저 살피며, 이미 들려주신 말씀 한 절이라도 삶으로 옮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말씀 앞에 오래 머무는 동안 굳어진 마음은 부드러워지고, 흐트러진 걸음은 다시 방향을 찾으며, 우리의 삶은 조금씩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빚어져 갈 것입니다. 그런 은혜 안에서 오늘도 말씀 앞에 정직히 서 있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