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를 여호와 앞에 펴 놓으라
[열왕기하 19:14]
히스기야가 사자의 손에서 편지를 받아보고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서 히스기야가 그 편지를 여호와 앞에 펴 놓고
히스기야가 받아 든 산헤립의 편지는 단순한 위협장이 아니었습니다. 앗수르 제국은 이미 여러 나라와 성읍을 무너뜨린 강대국이었고, 이제 예루살렘을 향하여 항복을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산헤립은 유다의 군사력만 조롱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도 다른 나라의 신들과 다르지 않다며 살아 계신 하나님을 모독했습니다.
히스기야는 이 문제를 자신의 능력과 지혜로 해결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편지를 들고 여호와의 성전으로 올라가 하나님 앞에 펼쳐 놓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내용을 모르셨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문제를 하나님의 판단과 통치 아래 맡긴 것입니다.
기도는 현실을 외면하거나 문제를 작게 만드는 일이 아닙니다. 문제를 있는 그대로 하나님 앞에 펼쳐 놓고, 그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구원을 요청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룹들 위에 좌정하신 거룩한 왕이시며,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이시고, 천하 만국을 홀로 다스리시며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히스기야의 기도는 자신의 안전과 왕위를 지켜 달라는 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유다를 구원하심으로 천하 만국이 여호와만이 참 하나님이심을 알게 해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참된 기도는 자신의 욕망에 하나님의 이름을 붙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과 이름과 나라를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네가 내게 기도하는 것을 내가 들었노라”고 응답하셨습니다. 아직 상황은 변하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들으셨다는 말씀으로 역사의 중심은 산헤립에게서 하나님께로 옮겨졌습니다.
산헤립은 자신이 수많은 나라와 견고한 성읍을 무너뜨렸다고 자랑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가 이룬 모든 일도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었음을 밝히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앗수르를 도구로 사용하셨지만, 산헤립은 자신을 역사의 주인으로 착각했습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았다는 사실이 교만을 정당화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많이 맡고 귀하게 쓰임 받을수록 더욱 겸손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 앞에 펼쳐 놓아야 할 편지가 있습니다. 가정과 자녀의 문제, 관계의 갈등, 건강과 경제의 부담, 교회와 일터의 어려움일 수 있습니다. 그 문제를 혼자 움켜쥐고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펼쳐 놓고, 내 뜻대로 해결되는 것만을 구하지 말고 그 일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과 이름이 드러나기를 구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를 높이시고 사용하실 때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어려울 때만 하나님을 찾고 형편이 나아지면 하나님을 멀리하는 반복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거처와 출입과 마음의 생각까지 모두 알고 계십니다.
감당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우리의 선택은 두려움이나 교만이 아니라 기도와 순종이어야 합니다. 편지를 여호와 앞에 펼쳐 놓을 때,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의 삶과 역사를 다스리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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