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검은불꽃

20261029 [에스라 8:21-23]
2026-10-29 06:14:50
광주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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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은

“그러므로 우리가 이를 위하여 금식하며 우리 하나님께 간구하였더니 그의 응낙하심을 입었느니라”[에스라 8:23]


   살아가면서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자신의 힘으로 감당하려 합니다. 처음에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조심스럽게 시작했던 일도 시간이 지나 익숙해지면 어느새 자신의 경험과 판단에 의지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뜻하지 않은 어려움을 만나면 그제야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제한적인지 깨닫곤 합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던 에스라에게도 그러한 현실이 놓여 있었습니다. 왕의 허락을 받았고 필요한 지원도 얻었지만, 그들이 가야 할 길에는 여전히 많은 위험이 있었습니다. 어린아이들과 가족들이 함께해야 했고, 성전에 드릴 귀한 예물도 안전하게 옮겨야 했습니다. 에스라는 이러한 형편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길을 떠나기 전 아하와 강가에서 금식을 선포하고 하나님께 평탄한 길을 구했습니다.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이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되었음을 알았기에, 그 길을 걸어가는 동안에도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던 것입니다. 에스라가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낮추었던 모습을 오래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은 자신의 연약함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신이 가진 능력과 경험조차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것임을 인정하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것보다 스스로 잘해 내는 일을 더 중요하게 여기지만, 믿음의 사람은 자신의 한계를 깨닫는 자리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에스라는 이미 아닥사스다 왕에게 하나님을 찾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선하신 손이 함께하신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길을 준비하면서 그 고백을 실제 삶에서 지켜야 하는 순간을 맞이했습니다. 왕에게 군사적인 보호를 요청할 수도 있었지만, 에스라는 자신이 고백했던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분의 도우심을 구하기로 했습니다. 그렇다고 사람의 도움을 받는 것이 믿음에 어긋난다는 뜻은 아닙니다. 에스라 역시 왕을 통해 베풀어진 도움을 하나님의 은혜로 받아들였습니다. 다만 이번 여정에서는 자신이 고백했던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그분께 자신의 길을 맡기고자 했습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다 보면 우리가 평소에 드리는 신앙의 고백을 돌아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인도하신다고 믿으면서도 정작 자신의 생각과 다른 일이 생기면 마음이 흔들리고, 하나님의 뜻을 구한다고 하면서도 이미 정해 놓은 답을 기다릴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그것은 모든 일이 내가 바라는 대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기대보다는,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선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놓지 않는 것에 더 가까울 것입니다. 믿음은 우리의 형편이 좋을 때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앞이 잘 보이지 않고 마음이 조급해지는 순간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자신의 생각보다 그분의 뜻을 귀하게 여기는 가운데 조금씩 자라갑니다.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해 왔어도 여전히 배워야 할 것이 많다는 사실을 에스라의 모습에서 다시 깨닫게 됩니다.

   에스라와 백성들은 금식하며 하나님께 간구했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그들은 기도를 마친 뒤 예루살렘을 향해 길을 떠났고,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에스라 8장 31절은 하나님의 손이 그들을 도우셔서 대적과 매복한 자들의 손에서 건져 주셨다고 기록합니다. 에스라가 길을 떠나기 전에 구했던 하나님의 도우심을 실제 여정 가운데 경험한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기도한 뒤에 여전히 감당해야 할 일들이 남아 있습니다. 염려했던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 않을 때도 있고, 오랜 시간 기다려야 하는 일도 있습니다. 그럴 때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듣고 계시는지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사실과 우리가 원하는 때에 원하는 방법으로 응답하신다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시간과 형편까지 아시며, 그분의 뜻 가운데 우리의 삶을 이끌어 가십니다. 기도하는 동안 우리가 원하는 상황이 달라지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 상황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마음이 먼저 달라지기도 합니다. 자신의 뜻을 이루는 데 마음을 쏟던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구하게 되고, 당장의 결과에 매여 있던 마음이 하나님께서 베풀어 오신 은혜를 기억하게 됩니다. 어쩌면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은 이러한 시간을 지나면서 조금씩 깊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언제나 굳건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를 붙드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변하지 않습니다. 오늘 하루도 모든 것을 자신의 힘으로 해결하려 애쓰기보다 하나님 앞에 우리의 형편을 아뢰고, 지금까지 우리를 인도하신 은혜를 기억하며 그분의 선하신 손길을 신뢰하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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