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검은불꽃

20261017 [에스라 4:1-6]
2026-10-17 06:51:51
광주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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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하지 않은 일이 찾아들 때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기타 이스라엘 족장들이 이르되 우리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데 너희는 우리와 상관이 없느니라

바사 왕 고레스가 우리에게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홀로 건축하리라 하였더니(3)

 

개인적으로나 공동체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열망이 피어오르고 하나님이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하려 할 때,

뜻하지 않은 시련이 찾아들기도 합니다.

그 때문에 낙심하여 그 일에 대한 열정이 사그라듦을 느낍니다.

믿음의 여정 중에 만나는 시련을 우리가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성전의 기초를 놓으며, 하나님을 높이고 찬송하는 소리가 가득했던 때가 무색하게

본문에 들어서면서 심상치 않은 일이 발생합니다.

유다의 대적들이 성전 재건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대적들은 유다 사람들을 가리켜'사로잡혔던 자들의 자손'이라고 부릅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의미의 강조점을 귀환에 두지 않고, 포로에 두고 있습니다.

유다 사람들이 바벨론에서 돌아왔지만, 여전히 포로의 연장선에 있다는 뉘앙스를 풍깁니다.

 

고대 교회에서 세상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예수쟁이)을 부름에 비하하고 무시하는 의미가 컸습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라 불리기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예수님의 길을 적극적으로 따르며 착하고 선한 행실을 통해 진정한 예수쟁이로 살아갔습니다.

오늘 우리가 죄인이지만 그리스도 십자가 부활의 은혜로 새롭게 된 존재로서

예수의 사람으로 온전히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유다의 대적들이 총독과 족장들에게 찾아와 요구한 일은

함께 성전을 지을 수 있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다 지도자들의 답변은 간결합니다.

'너희는 우리와 상관이 없다. 우리 홀로 하나님을 위해 건축할 것이다.'

 

대적들은 자신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본심을 드러냅니다.

그들이 성전 재건에 참여하려는 동기는 하나님을 향한 열망이 아니었습니다.

이 일에 관여함으로 결정권/통치권의 한 부분을 얻으려 했던 것입니다.

이들에게는 하나님에 대한 열망으로 유다 민족을 도우려는 마음은 커녕

오히려 유다 민족의 재건/부흥을 경계하며 가로막으려 했습니다.

이러한 방해는 느헤미야 때에도 나오는데 이들의 정체는 북왕국에 뿌리를 둔 사마리아 사람들입니다.

 

유다와 베냐민 사람들은 기억합니다.

자기 민족이 무엇 때문에 이방 민족의 칼에 무너지고 사로잡히게 되었는지 말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다른 존재들을 의지하며 살았습니다.

수많은 선지자가 하나님 뜻을 전하고 또 전해도 듣지 않고 끝까지 자기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포로된 시간을 지나 바벨론에서 돌아온 유다 민족은 말씀을 통해 하나님 마음과 뜻을 알았고

다시 동일한 잘못을 반복하지 않으려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그러하기에 대적들의 그럴 듯한 말은 물론 그들이 일컫는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사마리아인이라 불리는 이들은 앗수르의 이주 정책으로 혼합된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보다 중요한 것은 오랜 영적이고 도덕적인 부패입니다.

시간이 지나도 그 모습은 여전하며 혼합주의 신앙이 만연합니다.

그러하기에 유다 민족은 그들과 손을 잡고 함께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역시 혼탁한 세상에서 살아갑니다.

우리가 깨어 있음은 물론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이 시대를 분별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좋아 보이며 그럴듯해 보이는 불의와 손을 잡지 않고 하나님 뜻을 이루어가야 합니다.

 

유다 사람들이 마주한 시련은 뜻하지 않은 시련이지만

근본적으로는 믿음의 결단으로 인해 찾아든 시련입니다.

이러한 일을 마주할 때, 우리가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우리의 모든 삶은 우리만의 일이 아닌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귀한 선물입니다.

하나님의 섭리 속에 담겨 있는 시간이며 사건입니다. 

그러하기에 우리의 의지도 중요하고 필요하겠지만,

그 가운데 함께 계시는 성령님을 의지하며 주도하심을 따라 한 걸음씩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 생각보다 더 크고 주도면밀하신 성령께서 뜻하신 바를 아름답게 이루실 것입니다.

 

사랑의 주님, 때로 뜻하지 않은 일을 만날 때,

바로 그곳에 함께 계시는 성령님을 찾고 의지하며 길을 걸어가게 하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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