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검은불꽃

20261016 [에스라 3:1-6]
2026-10-16 05:25:21
광주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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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제단을 쌓다

“일곱째 달 초하루부터 그들이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기 시작하였으나 그 때에 여호와의 성전 지대는 미처 놓지 못한지라”[에스라 3:6]


     오랜 포로 생활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는 낯선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토록 그리워했던 고향이었지만, 오랜 세월 황폐해진 땅에는 이전의 모습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상징하던 성전은 무너져 있었고, 삶의 터전도 다시 마련해야 했습니다. 돌아왔다는 기쁨보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막막함이 더 크게 느껴졌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서 백성들이 가장 먼저 마음을 모은 일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회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일곱째 달이 되자 예루살렘에 모였고,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제단을 쌓았습니다. 주변 민족들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지만, 아침저녁으로 번제를 드리며 하나님께서 정하신 절기를 지켰습니다. 특별히 성전의 기초가 놓이기도 전에 제사가 시작되었다는 기록이 마음에 남습니다. 성전을 재건하는 일도 중요했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누구에게 속한 백성이며 무엇을 의지하여 살아가야 하는지를 먼저 기억했습니다. 제단을 세운다고 해서 당장 생활이 안정되거나 눈앞의 어려움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따라 다시 예배하기 시작하면서,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신앙의 질서도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일상에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면서 자꾸 뒤로 미루게 되는 일들이 있습니다. 하루를 시작할 때에는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며 살아가겠다고 마음먹지만, 막상 생활에 들어서면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이 생기고 여러 책임에 마음을 빼앗기곤 합니다.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에 집중하다 보면 하나님께 마음을 두는 시간은 자연스럽게 줄어들고, 어느 순간 기도보다 염려가, 말씀보다 자신의 판단이 앞서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지금의 바쁜 시간이 지나면 신앙생활에도 조금 더 충실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습니다. 그러나 삶은 좀처럼 모든 것이 정돈된 시간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한 가지 염려가 사라지면 또 다른 책임이 생기고, 어렵게 얻은 여유도 오래 머물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하나님을 가까이할 수 있는 좋은 때를 기다리느라 정작 오늘 주어진 은혜를 지나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단을 쌓은 후에도 아침저녁으로 번제를 드렸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들에게 예배는 한순간의 결심이나 특별한 행사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매일 반복되는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분의 말씀에 자신들의 생활을 맞추어 가는 일이었습니다. 우리에게도 그러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마음이 분주할 때 잠시 멈추어 말씀을 되새기고, 염려스러운 일을 만났을 때 서둘러 결론을 내리기보다 하나님께 기도하며, 사람을 대할 때에도 자신의 감정만 앞세우지 않도록 돌아보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이 당장 눈에 띄는 변화를 가져오지는 않더라도,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동안 우리의 생각과 태도는 조금씩 달라질 수 있습니다. 믿음은 특별한 순간에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하루를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가에서도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쌓은 제단은 죄인이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 속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리고 그 제사의 의미는 우리를 위해 자신을 온전히 내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완성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내세울 만한 의로움이 있어서 그분께 나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부족함과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께서 열어 주신 은혜의 길이 있기에 오늘도 하나님을 찾을 수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자신의 힘으로 모든 것을 감당하려 했던 순간들이 적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맡긴다고 하면서도 결과를 염려했고, 말씀을 알고 있으면서도 익숙한 생각과 습관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때로는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서는 일조차 조심스러워질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을 붙들어 주는 것은 스스로 세운 결심의 굳건함이 아니라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면서도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받아 주시고, 말씀과 성령으로 새롭게 빚어 가십니다. 그러므로 신앙을 돌아보는 시간은 지나온 부족함을 헤아리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동안 우리를 붙들어 주셨던 은혜를 다시 기억하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아직 삶의 모든 부분이 제자리를 찾지 못했더라도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행하시는 일은 멈추지 않습니다. 무너진 성전의 터 위에서 다시 제사가 시작되었던 것처럼, 오늘의 평범한 일상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은 새롭게 자라날 수 있습니다. 그 은혜를 기억하며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더욱 깊이 신뢰하고, 작은 일에도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우리를 붙드시는 주님의 사랑 안에서 믿음이 새로워지는 오늘 하루가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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