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이 다시 들려올 때
“왕이 율법의 말씀을 듣자 곧 자기 옷을 찢더라”[역대하 34:19]
오랫동안 곁에 두고 살아온 것일수록 그 소중함을 잊고 지낼 때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마음 깊이 새겨 두었던 말도 시간이 흐르면 익숙해지고, 한때는 큰 위로와 힘이 되었던 말씀도 어느 순간 아무런 감동 없이 지나가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그렇습니다. 성경을 읽고 예배 가운데 말씀을 들으며 살아가지만, 정작 그 말씀이 우리의 생각과 삶을 얼마나 이끌고 있는지는 돌아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말씀을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그 말씀 앞에 진지하게 머무는 일이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요시야 시대의 유다도 그러했습니다. 성전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도 계속되고 있었지만, 정작 그들의 삶을 이끌어야 할 하나님의 말씀은 오랫동안 잊혀 있었습니다. 성전을 수리하던 중 발견된 율법책은 그렇게 잊고 지냈던 하나님의 뜻을 다시 일깨웠습니다. 무너진 성전을 고치는 일에 마음을 쏟고 있었지만, 정작 돌아보아야 할 것은 말씀에서 멀어진 자신들의 삶이었습니다. 우리도 신앙의 여러 일들을 성실하게 감당하면서 정작 말씀 앞에 자신의 마음을 비추어 보는 일에는 소홀할 수 있습니다. 예배하고 기도하며 맡겨진 일을 감당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지만, 그 모든 일의 중심에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있는지는 쉽게 지나치곤 합니다. 말씀을 가까이 두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말씀을 따라 살아가고 있다고 여길 수는 없습니다. 익숙한 신앙의 모습 속에서 어느새 희미해진 말씀의 자리를 돌아보게 됩니다.
요시야는 발견된 율법책의 말씀을 듣고 자기 옷을 찢었습니다. 그는 이미 하나님을 찾으며 우상을 제거하고 성전을 수리하던 왕이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열심도 있었고, 이전의 잘못된 신앙을 바로잡으려는 노력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듣는 순간 요시야는 자신이 이루어 놓은 일들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뜻 앞에서 자신과 백성들의 삶이 얼마나 멀어져 있었는지를 깨달았습니다. 그동안 옳다고 여겼던 일들과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던 모습들까지 말씀 앞에서 다시 바라보게 된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익숙한 기준이 생깁니다. 이 정도면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이전보다 나아진 모습에 스스로 만족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다른 사람의 부족함은 쉽게 보면서 자신의 마음에 자리 잡은 교만과 완고함은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그러나 말씀 앞에 오래 머물다 보면 미처 보지 못했던 자신의 모습이 드러납니다.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던 말 한마디가 마음에 걸리고, 당연하다고 여겼던 생각이 부끄러워지며, 오래도록 품고 있던 서운함과 미움이 얼마나 깊이 자리하고 있었는지도 깨닫게 됩니다. 말씀은 그렇게 우리가 애써 외면했던 마음의 자리까지 비추어 줍니다. 그 앞에서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드러내시는 것으로 끝내지 않으십니다. 스스로 괜찮다고 여기며 지나쳐 온 삶을 다시 돌아보게 하시고, 굳어진 마음을 돌이켜 하나님을 향하도록 이끄십니다. 요시야가 옷을 찢으며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낮추었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말씀 앞에서 자신을 변호하기보다 조용히 마음을 내려놓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요시야는 말씀을 듣고 마음 아파하는 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신하들을 보내어 그 말씀에 대하여 하나님께 묻게 했습니다. 자신과 백성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깨달았을 때, 그가 먼저 구한 것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말씀을 듣기 전에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걸어갈 수 있었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고는 이전처럼 살아갈 수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에도 그런 순간이 있습니다. 늘 읽던 말씀인데 어느 날 유난히 마음에 오래 남을 때가 있고, 여러 번 들었던 말씀인데 지금의 자신을 돌아보게 할 때가 있습니다. 마음 한편에 묻어 두었던 잘못을 인정하게 되고, 미루어 두었던 순종을 다시 생각하게 되며, 익숙하게 걸어왔던 길을 잠시 멈추게 됩니다. 그때 우리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여전히 붙들고 계심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우리가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들려주지는 않습니다. 때로는 내려놓아야 할 것을 보여 주시고, 돌이켜야 할 길을 깨닫게 하시며, 오래도록 붙들고 있던 생각을 바꾸도록 이끄십니다. 그렇게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단순히 새로운 사실을 알아가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삶을 다시 살피는 일입니다. 요시야 시대에 오랫동안 잊혀 있던 말씀이 다시 발견되었던 것처럼, 우리의 마음속에서도 희미해졌던 말씀의 자리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말씀을 다시 귀 기울여 듣고, 그 말씀 앞에서 자신의 마음을 정직하게 돌아보며, 깨닫게 하신 뜻을 따라 오늘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말씀이 익숙한 지식으로만 남지 않고 우리의 마음을 깊이 비추며, 그 말씀을 통해 날마다 자신을 돌아보고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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